좀처럼 밤이 올 것 같지 않았다

해가 지지 않는 사흘 밤 사흘 낮

시베리아 벌판을 바라보며

어떤 이는 징키스칸처럼 말달리고 싶다 하고

어떤 이는 소떼를 풀어놓고 싶어 하고

어떤 이는 감자 농사를 짓고 싶다 하고

어떤 이는 벌목을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거기다 도시를 건설하고 싶은 눈치였다

1907년 이준 열사는 이 열차를 타고 헤이그로 가며

창밖으로 자신의 죽음을 내다봤을 것이다

이정표도 간판도 보이지 않는 이 꿈같이 긴

기차 여행을 내 생전에 다시 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지그시 눈을 감는데

누군가 취한 목소리로 잠꼬대처럼

“시베리아를 그냥 좀 내버리면 안 돼?”

소리치는 바람에 그만 잠이 달아났다

더 바랄 무엇이 있어 지금 나는 여기 있는가?

좀처럼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가까스로 밤에 이르렀지만

아침이 오지 못할 만큼 밤이 길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