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7월 25일 오후

마음의 사방 벽을 온통 눅눅하게 만든

장맛비와 장맛비 사이 반짝 얼굴 내민 햇빛 속에

하얗게 빛나는 화강암 돌계단 올라가

녹음 속에서 혼자 인사하고 들어간 대웅전

부처도 장엄도 건물도 잠들어 있다.

두 손 모아 아는 체해도 모르는 체 잠들어 있다.​

밖으로 나온다.

곁채 그늘에서 강아지가 엎드려 졸고

눈앞에는 점박이 나비 하나

소리 없이 날고 있다.

이게 혹시 고요의 한 모습?​

이끄는 발길 따라 조심조심 대웅전 뒤로 돌아가본다.

환하다.

땅바닥에 큰 타원 수놓으며 깔려 있는 저 융단, 저 이끼,

저 색깔!

몸 오싹할 만큼 마음을 쪽 빨아들이는,

그냥 초록도 아니고 빛나는 연초록도 아닌

그 둘을 보태고 뺀 것도 아닌

초록 불길 속에서 막 나온 초록 불길 같은,

슬픔마저 빼앗긴 밝은 슬픔 같은,

이런 색깔이 이 세상 어디엔가 있었구나.

이 만남을 위해 70년 가까운 세월이 훌쩍 지나갔는가?

바로 이게 혹시 저 세상의 바닥은 아닐까?

살아서는 두 발을 올려놓지 말라는.


​시집 <겨울밤 0시 5분> 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