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3/22
한동안
가포에 있는 낡은 집에 가 있었다
늙은 내외만이 한 쌍의 말간 사기 그릇처럼
바람에 씻기며 살아가고 있는
바닷가 외딴집
바다 소리와 함께 그럭저럭
할 일 없이
보고 싶은 이 없이 참을 만했던 며칠
저녁이면 바람이
창문에 걸린 유리구슬 주렴 사이로
빨강 노랑 초록의 노을 몇 줌을
슬며시 뿌려주고 가기도 했다
손톱만한 내 작은 방에는 구름처럼 가벼운
추억 몇 편이 일렁이며 떠 있기도 했다
그 집에 머물던 며칠 동안
내 가슴속 아슴하게 오색 물무늬가 지던
그러한 며칠 동안
나는 사랑이라든가
사랑이 주는 괴로움이라든가 하는
마음의 허둥댐에 대하여 평온했고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그런 허둥댐의 덧없음에 대하여
다 돌아간 저녁의 해변처럼 심심해지면,
평상에 모로 누워 아슴아슴 귀를 팠다
오랫동안 곰곰이 내 지나온 세월과
살아갈 세월을 생각했다
가끔, 아주 가끔
아픈 듯이 별들이 반짝였고 그때마다
감나무 잎사귀들은 바다와 함께 적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