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앞에 반쯤 눈 덮인 들판
반쯤 눈뜬 하늘
혼자 사는 일은
끊임없는 갈증, 방향없는 돌아옴,
창이 어두워 올 때
내 앞의 촛불보다 먼저 잠들었을 때
창 가까이 별들이 돌아가고
나의 손 펼친 잠이여
병자(病者)의 광학(光學)
나의 잠 속에는
잘 아는 길을 헤매다니는
먼 우뢰소리 들린다
무엇엔가 가까이 다가가는 자는
자기 눈물의 맛을 보는가
닫힌 창에 뻗혀진 손을
찾게 되는가
병자(病者)의 광학(光學), 나의 어두운 눈에 외로운 두 손에
반쯤 눈 덮인 들판
반쯤 눈뜬 하늘.
들 한가운데는
얼어붙은 연못이 있어
나 갔었네, 해질 무렵이면
내 몸 속 잔뼈에
희미한 불들을 감추고
새 하나 날지 않는 공간(空間)
빈 나무 하나 비쳐 있을 뿐
아픔에 살이 익어 더 어둡지 않는 우리들이여
나의 방황은 거기에 있네
새 하나 날지 않는 공간에
저녁 무렵에.
갑자기 놀라 잠이 깰 때면
복잡한 소리를 내며 도는 지구(地球)의 소리
때로 꿈속에도 들었다.
세상의 무딘 고동소리
저음(低音)으로 답하는 사람들의 소리
또 돌산을 오르는 나
진실로 같은 틀로 나고 끝남을 알게 된다면
다시 나고 싶지 않으리라
이끼풀까지도
다시 살고 싶지 않으리라
몸 속을 훤히 밝히는
저 새벽빛을
이 돌산의 고요함을
돌산과의 아무 소리 없는 이 상봉(相逢)을
광대같이 홀로 흐느끼는 나의 얼굴
나의 죽음이여, 내가 자리를 때로 벗어나
어느덧 낯선 사내같이 웃을지라도
미소 담긴 얼굴로 답하여 다오
그 미소 속에 더 탈 수 없는 것도 타고
이미 익은 살도 다시 어두워지리
아프리, 저 새벽빛.
<어떤 개인 날, 중앙문화사, 19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