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백운 국민학교 3학년이였을때
충주사범을 갓 졸업한 권영희선생님이
나의 담임교사로 부임을 왔다
내생애의 한 복판에 민들레꽃으로 피어서
배고픈 열한살의 나를 숨막히게 했다
멀리 솟은 천둥산 아래 잠든마을에
풍금을 잘 치는 예쁜 여교사가 왔다
어느날 하교길에 개울의 돌다리를 건너며
들국화 한 송이 가리키듯 나를 손짓했다
탁번아 너 내 동생되지 않을래?
전쟁때 부모가 다 돌아가시고
오빠도 군대에 가서 나는 너무 외롭단다
선생님이 누나가 되는 정말 이상한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듯 일어났다
송화가루 날리는 봄언덕에서
누나다 누나다 선생님이 이젠 누나다
영희누나다 영희누나다
가을물 반짝이는 평장골 뒷개울에서도
고드름 떨어지는 겨울 한나절에도
누나의 동생으로 꾸는 꿈은 솔개그늘처럼 아늑했다
영희누나가 있으면 배고프지 않았다
울지도 않고 숙제도 잘했다
영희누나한테 착한 어린이가 되지 못하는 날은
꿈속에서 벌서며 오줌을 쌌다

 

 

 


- 오탁번 시선집 '사랑하고 싶은날' 시월 출판사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