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나무를

오늘도 그냥 지나치지 못했습니다

어제의 내가 삭정이 끝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아

이십 년 후의 내가 그루터기에 앉아 있는 것 같아

한쪽이 베어져나간 나무 앞에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덩굴손이 자라고 있는 것인지요

내가 아니면서 나의 일부인,

내 의지와는 다른 속도와 방향으로 자라나

나를 온통 휘감았던 덩굴손에게 낫을 대던 날,

그해 여름이 떠올랐습니다

당신을 용서한 것은

나를 용서하기 위해서였는지 모릅니다

덩굴자락에 휘감긴 한쪽 가지를 쳐내고도

살아 있는 저 나무를 보세요

무엇이든 쳐내지 않고서는 살 수 없었던

그해 여름, 그러나 이렇게 걸음을 멈추는 것은

잘려나간 가지가 아파오기 때문일까요

사라진 가지에 순간 꽃이 피어나기 때문일까요

 

 

 

 

 

시집 <사라진 손바닥> 문지.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