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뱅이 자귀나무는
봄을 건넌 뒤에야 기지개 켠다
저거 잘라버리지, 쓱쓱 날 세우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연초록 눈을 치켜뜬다
허리춤에서 부챗살 꺼내 펼치듯
순식간에 푸르러져서는 애써 태연한 척,
송알송알 맺힌 식은땀 말린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쪼매 늦었죠, 니년은 그새
밀린 지각비가 얼만 줄이나 알어?
양지다방 김양은 허기만 더할 말대답 대신
스쿠터 엔진 소리로 콧방귀를 뀐다
확연한 빚만 켜켜이 쌓여 있는 여름,

 

자귀나무 연분홍 꽃잎이 헤프게 흩날린다
배알도 없이 헤프게 으응 자귀 자귀야
야들야들한 코맹맹이 꽃 입술
엉덩이 흔들어 날려보낸다 아찔한 속살
조마조마하게 내비치기도 하면서
(전 괜찮아요, 보는 놈만 속 타지)
오빠 냉커피 한잔 더 탈까, 지지배
지지배배 읍내 제비 앞세운 김양이 쌩쌩 달려나간다

 

연분홍 자귀꽃 흩뿌려진 땡볕 배달길,
따가운 빚이 신나게 까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