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익지도 않은 감이

땅에 떨어진다

떨어지면서 감은 겉껍질에 상처가 난다

깨어진 껍질에서 진물 같은 것이 나와서 제 상처를 감싼다

떨어져서도 보호해야 할 그 무엇이 그 안에 있었을까

떨어진 감은 겉에서부터 썩어갈 것 같은데

그 안에 모든 것이 썩어서 사라질 때까지

그 얇은 껍질이 감의 형상을 붙잡고 있다

조개가 빠져나간 조개껍데기가 그렇듯이

감을 감으로 불리우게 하는,

그 무엇을 그 무엇으로 불리우게 하는 것은

다 사라진 뒤에도

사라진 그것을 추억하는

그 얇은 껍질인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껍질을 버린다는 것은,

껍질을 벗는다는 것은

추억할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그리하여

바람 속에 바스락 소리도 없이 무너져 가며

감의 기억을 붙잡고 있는 저 껍질을

비단조개의 껍데기를 오래 바라보듯

나 오래 바라보고 있다

 

 

 

 

 

시집 <마늘 촛불> 애지.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