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으로 난 길을 따라 바다에 이르렀다

오랫동안 흔들렸으므로 한 그루 나무가 쓰러졌다
작은 씨앗 하나 땅에 떨어져 어린 싹을 키우고
푸른 그늘을 드리우고 서 있는 일이란
사람이 태어나 걸어가는 알 수 없는 내일의 길처럼
허공중에 저마다 가지를 뻗으며 길을 내어가는 것이라 여겼다
이제 나무가 쓰러지고
스스로 밀어올린 모든 길의 흔적은 한 점 남김이 없다
그렇다면 나무의 지난 시절은 한갓 덧없는 일이었는가

내일이나 아니면 오래지 않아
나는 톱과 낫을 들고 길게 길을 베고 누운
나무의 잠 속에 다가갈 것이다
그리하여 나무들은 아궁이 속에서
내 몸안에 이처럼 훨훨 타오르는 불길을 가지고 있었노라고
탁탁 소리칠 것이다
방바닥은 뜨겁게 달아오를 것이다
그 방에 등을 누인 내 잠의 어느 한순간
푸른 나무의 생애가, 그가 저 하늘을 향해 닦아가던
가지가지마다의 반짝이던 길들이
한번쯤은 보이지 않을까

굴뚝을 통해 춤을 추듯 솟아오르며 펴져가는 연기들이
언뜻 나무의 푸른 그늘을 그려 보인다
한때 나의 젊은 날도 휘감기며 노을 속을 떠돈다
곧 밤은 깊어질 것이고 나는 그 밤의 어느 한자락을 베고
오랜 잠에 들 것이다 

 
시집 <적막> 창비.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