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쯤에서 멈추자
영(嶺)을 사이에 두고
인제로 넘거나, 양양으로 되넘는 일이
이제는 모두
이속(離俗)이므로.

 

한때 이 영(嶺)보다 높은
청청한 대청과 점봉을 보며
깃대 끝에 결심을 매단 적이 있었으나
그것은 번민과 욕심이 짠
피륙에 지나지 않았으니,

 

내려놓음으로
내 살과 피는 비로소 자유를 닮는다.

 

한계(寒溪)의 마루 그 풍경에
내 마음을 꺼냄으로써
내가 설악(雪嶽)의 빛깔과 겹쳐지노니.

 

전각(篆刻)처럼 새기던 사모하는 이의 얼굴도
이쯤에서는 멈추자.

 

한계(寒溪)는 사철 바람의 나라이므로
바람이 명명(命名)하는 경물(景物)들 사이에 줄서서
내 이름의 순서를 천천히 기다려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