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시에 피가 돌고,
피가 끓던 시절이 있었지;
그땐 내가 시에 촌충처럼 빌붙고
피를 빨고 앙상해질 때까지 시를
학대하면서도, 딴에는 시가 나를 붙들고 놔주질 않아
세상 살기가 폭폭하다고만 투덜거렸던 거라.

 

이젠 시에게 돌려주고 싶어.
피를 갚고
환한 화색을 찾아주고
모시고 섬겨야 할 터인데

 

언젠가 목포의 없어진 섬 앞, 김현 선생 문학비
세워두고 오던 날이었던가?
영암 월출산 백운동 골짜기에
천연 동백숲이 한 장관壯觀을 보여주는디
이따아만 한(나는 두 팔을 동그랗게 만들어 보인다) 고목이
허공에 정지시켜놓았던 꽃들을 고스란히
땅 우에, 제 슬하 둘레에 내려놓았드라고!
산産달이 가까운 여자 후배 하나가
뚱게뚱게 걸어서 만삭의 손으로
그 동백꽃 주우러 다가가는 순간의 시를
나는 아직까지 못 찾고 있어.
상하지 않고도 피가 도는 그 온전한 시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