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애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보험 하나 들어달라고. 성대도 늙는가, 굵고 탁한
목소리. 10년 전 이사 올 때 뭉쳐 놓았던 고무 호스, 벌어진 채 구멍
오므라들지 않던 호스가 떠올랐다.
 
오후에 돋보기 맞추러 갔다가 들은 이야기; 흰 모시 치마저고리만 고집하던 노마님이
사돈집에 갔다가 아래쪽이 조여지지 않아 마루에 선 채 그만 실례를 하셨다고.
 
휴지 가지러 간 사이 식어버린 몸, 애걸복걸 제 몸에 사정하는 딱한 사연도 있다.
조이고 싶어도 조일 수 없는 不隨意筋, 늙음이다.
몸 조여지지 않는데도 마음 사그라들지 않는 난감함,
 
늙음이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가 실은 남남이듯 몸과 마음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깨달음, 찬물에 발바닥 적시듯 제 스스로 느끼기 전엔 도무지 알 수 없는 사실, 이것이 늙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