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반 고흐처럼
계속 물감을 바르라 보채는 캔버스를 벗어나
어디 숨 좀 쉴 공기를 찾아 피스톨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
까마귀 줄지어 나르는 누런 밀밭이 아직 있을까?

 

가며가며 금속피로처럼 쌓이는 마음의 안개 잠시 밀어내고
과일과 과자 꾸러미를 사들고
뵈지 않게 숨어서 우는 아이들을 찾아가
‘눈물 그만, 여기 맛있는 사과와 과자가 있네!’ 달래
울음을 그치게 하고
파워레인저 로봇들을 하나씩 손에 쥐어주고
‘이제 나는 가도 되지?’ 말하고
넌지시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눈 한번 딱 감고 걸어
사방에 아무도 없이 밑불들만 간지럼 타듯 타는 곳으로
나갈 수 있을까?

 

 

 

『겨울밤 0시 50분』(현대문학,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