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흩어지고 나면 골짜기는 온통 달빛의 모래밭이다
높은 곳에 둥지 튼 새들은 가장 늦게 어두어지고 가장 먼저 그날의 햇빛을 받는다
상수리 열매는 무거워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제 열매가 익어서 떨어지는 것이다
온종일 느티 그림자가 땅 위를 비질해도 가랑잎 하나를 옮겨놓지 않는다


흙탕물은 아무리 흐려도 수심 위에 저녁별을 띄우고
흙은 아무리 어두워도 제 속에 발 내린 풀뿌리를 밀어내지 않는다
벼랑 위의 풀뿌리는 제 스스로는 두려워 않는데 땅위에 발디딘 사람들만 그 높이를 두려워한다
겨울 나무의 바람 소리는 바람이 우는 것인가 나무가 우는 것인가
즐거움은 쌓아둘 곳간이 없고 슬픔은 구름처럼 흘러갈 하늘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