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버스가 나타났다
비 내릴 때 나의 마음을 태울 차가 저렇게 분명하게 오는 일이 거북하지 않나 일단 그렇지 않나
해 진 뒤에 마음은 배롱나무 계단을 오르내리는데
버스가 오면 나는 손을 들지도 않고 돌아서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것보다 당신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불빛을 켠 밝은 내부, 담쏙 받아 든 자두 광주리 같은 저녁을 태우고 버스가 온다
버스가 오나 보러 나와 한번쯤은 세상이 우리에게 시간을 맞춰줄 수도 있지 싶다
당신을 먼저 집으로 보내는 것인데
2,3일 후 4,5일 후 무려하게 따라갈 수도 있지 싶다
우레 치는 길은 옷고름을 풀어가
버스가 오는 걸 미끄러지듯 받아 안는다
언젠가는 다가올 슬픔 중 가장 귀한
버스가 온다면 사랑한다고 꼬집는 묵언도 쓸데없을 것이다
그런 시간이면 가까스로 불이 붙은 라이터가 입술 주위를 밝힐 것이다
지금은 손을 들지 않고 버스를 보낼 수도 있는
누가 봐도 생에게 또박또박 대꾸를 할 수 있는 시간 언저리

 

곧 버스가 끊기는 밤이 된다
슬프면 안 된다
그 뒤에는 자연사박물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