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작에 자목련쯤으로 오시거나

더 기다렸다가 수국이나 백일홍이 되어 오셨으면

금세 당신을 가려냈으련만.

하필 풀꽃으로 오셨어요, 그래.

 

새벽같이 만나리라 잠도 못 이루고요,

눈뜨자 풀숲으로 내달았는데요.

그렇게 이른 시간에 우리말고

누가 더 있으랴 싶었는데요.

 

목을 빼고 손짓하시겠거니, 슬렁슬렁

풀섶을 헤집는데요, 아 이런……

온 산의 풀이란 풀들이 죄다 고개를 쳐들고

사람 찾는 낯이 되지 뭐여요.

이를테면 금낭화, 맥문동, 애기똥풀.

 

요다음엔 이름이나 일러주세요.

알고 간대도 이름과 얼굴이 따로 놀아서

오늘처럼 허탕만 치고 오겠지요만.

 

 

 

 

시집 <사랑을 놓치다> 문학동네. 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