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 사이

전나무들은 부처님의 허리처럼 곧추 서 있고

월정사 석탑과 상원사 동종 사이

하늘을 찌르다 비스듬히 휘어진 탑 끝과

천년 묵은 놋쇠자궁의 동종 사이

방한암 선사의 결가부좌 비슷한 한길과

경 읽다 다 닳은 팔꿈치의 굽이 길 사이

한 순간 개명(開明)하듯 눈 내려 환하다.

사이사이 산들은 모조지로 접은 종이학이다.

그대가 곁에 있어 옛날에는 마음을 모아

밤새도록 정갈히 접고 만들었던 종이학.

지금은 종이학 접어 빌어 줄 그리운 사람도,

사람도 아주, 아주 소식줄 끊겨

만드는 법도 까마득히 잊은 무명(無明)같이

칠흑의 흰 바탕뿐인 마음눈이 내린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상원사 사이

유리병 안에 천 마리 학이 갇혔구나.

그저 하얗게 저무는 경전의 말씀.

하실 말씀 더 없으신 눈이 기막히게 내린다.

내린 눈보다 내가 더 조용히 깊고 하얗게 젖는다.

 

 

 

 

 

 

 

 

-『현대문학』2009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