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같은 자리에 돋는 새잎이란 없다

이미 새잎이 아니지

낮선 자리 비켜서

옛 흉터를 바라보며 지우며 새잎은 핀다

 

이전의 사랑은 상처이거나 흉터다

이후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므로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비켜서

덤덤히 바라볼 수 있는 눈빛으로

나무의 새순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싹튼다

 

제 형체와 빛깔과 향기를

지우고, 지고 부정하고 배반하고

새잎은 비로소 새잎이다

 

내 너를 사랑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한 적 없다

오늘은 내 어느 부위에 상처를 남겨두랴 

 

엄살 피우지 말자

남은 날 가운데 가장 새것이어서

우리 세포는 너무 성하다

흉터 따위를 기억하는 것은 사랑도 아니다

 

지금 네가 마지막 첫사랑이다

 

 

 

 

 

시집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