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13
다시 같은 자리에 돋는 새잎이란 없다
이미 새잎이 아니지
낮선 자리 비켜서
옛 흉터를 바라보며 지우며 새잎은 핀다
이전의 사랑은 상처이거나 흉터다
이후의 사랑도 그러할 것이므로
사랑을 두려워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조금 비켜서
덤덤히 바라볼 수 있는 눈빛으로
나무의 새순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싹튼다
제 형체와 빛깔과 향기를
지우고, 지고 부정하고 배반하고
새잎은 비로소 새잎이다
내 너를 사랑한 것은 사랑이 아니었다
사랑한 적 없다
오늘은 내 어느 부위에 상처를 남겨두랴
엄살 피우지 말자
남은 날 가운데 가장 새것이어서
우리 세포는 너무 성하다
흉터 따위를 기억하는 것은 사랑도 아니다
지금 네가 마지막 첫사랑이다
시집 <따뜻한 외면> 실천문학사. 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