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매를 다 털어낸 늙은 나무가

마지막 숨을 몰아쉬기 시작한다.

시든 나무 그늘도 떠날 준비를 하고

가지 사이 거미도 거미줄을 걷어들일 즈음,

우울한 부나비 한 마리 날개 접고

새들이 날아간 석양 쪽을 바라본다.

 

잠시 잠들었었나, 잠시 죽었었나

모든 사연이 휘발한 땅이 그새 문 닫고

피곤에 눌려 커다란 밤 장막을 내린다.

아, 그러나, 우리는 손해본 게 아니었구나.

청명 밤하늘의 이 별들, 무수한 환희들!

헤어진 별 옆에서 새로 만난 별이 웃고

집 떠난 밝은 유성은 잠시 발 멈추고

죽어가는 나무에게 가볍게 입맞춤한다.

 

갑자기 나무 주위에 환한 꽃향기 넘치고

누군가 만 개의 새 별들을 하늘에 뿌렸다.

어디선가 고맙다, 고맙다는 메아리 울리고…….

 

 

 

 

 

 

시집 <우리는 서로 부르고 있는 것일까> 문지.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