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브란스 병원 영안실 뒤편 미루나무 숲으로

가시에 긁히며 들어가는 저녁 해;

누가 세상에서 자기 이외의 것을 위해 울고 있을까

해질녘 방바닥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는 자도 있으나

이제 얼마나 남았을꼬

아마 숨이 꼴깍하는 그 순간까지도

아직 좀더 남았을 텐데, 생각하겠지만

망년회라고 나가보면 이제 이곳에 주소가 없는 사람이 있다

동창 수첩엔, 벌써 정말로 졸업해버린 놈들이 꽤 된다

배 나오고 머리 빠진 자들이

소싯적같이 용개치던 일로 깔깔대고 있는 것도

아슬아슬한 요행일 터이지만

그 속된 웃음이 떠 있는 더운 허공이 삶의 특권이리라

의사 하는 놈이, 너 담배 안 끊으면 죽는다이, 해도

줄창 피우듯이 또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 잊는다

 

 

 

 

 

 

시집 <어느 날 나는 흐린 酒店에 앉아 있을 거다> 문지.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