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여행을 가다가

싸우고 돌아오는 길

기름을 넣으려고 주유소에 들어간다

 

‘가득이세요’ 라는 말이

‘가족이세요?’ 라는 말로 들리는 순간

 

가득과 가족 사이에서 잠시 묘연해진다

 

가득이라는 것은

바닥난 속을 온전히 채우는 것이고

가족이라는 것도

서로의 빈 곳을 채워주어야 하는데

 

아내는 옆자리에서 눈감고

메마른 유전을 건너가고 있다

아무리 채우려 해도 금세 빠져나가는

사소한 빈틈

서로 다른 곳을 적시고 있는 건 아닐까

가득이 가족으로 들리는 배후가 궁금해진다

 

연료가 소진되며 자동차가 굴러가듯

그동안 우리 사이에 소진된 것은 무엇인가

소모되는 것들의 힘으로

일상을 지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바닥난 가족을 가득 채우러

다시 길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