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불빛이 저녁을 끌고 온다
찬물에 말아 넘긴 끼니처럼
채 읽지 못한 생각들은 허기지다
그대 이다음에는 가볍게 만나야지
한때는 수천 번이었을 다짐이 문득 헐거워질 때
홀로 켜지는 불빛, 어떤 그리움도
시선이 닿는 곳까지만 눈부시게 그리운 법이다
그러므로 제 몫의 세월을 건너가는
느려터진 발걸음을 재촉하지 말자
저 불빛에 붐비는 하루살이들의 생애가
새삼스럽게 하루뿐이라 할지라도
이 밤을 건너가면 다시
그대 눈 밑의 그늘이 바로 벼랑이라 하더라도
간절함을 포기하면 세상은 조용해진다
달리말하자면 이제는 노래나 시 같은 것
그동안 베껴 썼던 모든 문자들에게
나는 용서를 구해야한다
혹은 그대의 텅 빈 부재를 채우던
비애마저 사치스러워 더불어 버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