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4/16
안개가 길을 연다 뭉턱뭉턱 몰려다니던 두터운 몸을 가닥가닥 찢어서 바
람의 체에 거르는 실안개들, 한적한 길만 쓸고 다니는 허공의 얇은 옷자락
이다 하늘하늘한 길의 감촉을 따라 망연히 명옥헌에 들어서자 아, 수천 수
만의 붉은 나비떼, 제 신열로 몸이 열리는 장엄한 부화를 본다 하르르 하르
르 날아오르는 불꽃 나비들 빈정원, 배롱나무 꽃술 심지 마다에 불길이 번
지고 있다 장자의 나비떼와 뒤섞인 내 안의 무수한 나비떼, 중심을 놓아버
린 꽃의 환타지다 욕망이 부끄럽지 않은 몸의 황홀이다 이제 날개에 불이
붙은 배롱나무들 지지 않는 오백 년 꽃노을로 송두리 채 호수에 빠져 드는
데 소리 없이 소리지르는 저 불꽃 수화들, 뼈 없는 물 속에서도 저리 뜨겁
고 요란하다.
* 명옥헌 : 담양에 있는 오백 년 된 배롱나무 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