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에 마른 열매가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오늘 아침이었다.

책상 위의 석류와 탱자는 돌보다 딱딱해졌다.

향기가 사라지니 이제야 안심이 된다.

그들은 향기를 잃는 대신 영생을 얻었을지

모른다고, 단단한 껍질을 어루만지며 중얼거려본다.

지난 가을 내 머리에 후두둑 떨어져 내리던

도토리들도 종지에 가지런히 담겨 있다.

흔들어보니 희미한 종소리가 난다.

마른 찔레 열매는 아직 붉다.

싱싱한 꽃이나 열매를 보며

스스로의 습기에 부패되기 전에

그들을 장사지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때 이른 풍장의 습관으로 나를 이끌곤 했다.

바람이 잘 드는 양지볕에

향기로운 육신을 거꾸로 매달아

피와 살을 증발시키지 않고는 안심할 수 없던,

또는 고통의 설탕에 절인 과육을

불 위에 올려놓고 나무주걱으로 휘휘 저으며

달아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던 나는

건조증에라도 걸린 것일까.

누군가 내게 꽃을 잘 말린다고 말했지만 그건

유목의 피를 잠재우는 일일 뿐이라고,

오늘 아침 방에 들어서는 순간

후욱 끼치던 마른 꽃 냄새, 그 겹겹의 입술들이,

한 번도 젖은 허벅지를 더듬어본 적 없는 입술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나비처럼 가벼워진 꽃들 속에서.

 

 

 

 

ㅡ나희덕 시집『사라진 손바닥』문학과지성사(2004)